안녕하세요. 거의 1년만입니다.
2년짜리 호스팅을 끊어놓고 글을 아무것도 안 쓰고 있는 건 그냥 미친놈같아서 뭐라도 써 보려 하는데,
사실은 제가 군입대를 했다는 소식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얘도 군대를 가네?”
실제로 친구들이 입대한다는 제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온 이야기입니다.
뭐.. 대한민국에서 남성으로 태어났다면 일생에 한 번쯤은 져야만 하는 국방의 의무인데,
이상할 것도 없죠.
저는 지난 2023년 8월 27일 토익 시험을 벼락치기로 보고 985점을 받아 카투사에 지원했습니다.
2023년 9월 14일부터 지원을 받으니, 진짜 지원하기 바로 전에 시험을 본 거죠.
가을에 입대해서 겨울을 두 번 보내게 되는 10월 입영으로 정하고 지원을 넣었습니다.
경쟁률은 7.3대 1, 그렇게 높다고 하지는 못하지만 완전 무작위 선발이라 제발 붙게 해 달라고 빌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사실 빌지는 않았습니다. 지원한 것도 잊고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23년 11월, 최종합격이 확정되었습니다.
군생활만큼은 편하게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고 나서 2024년 10월 21일이 찾아왔습니다. 시간은 정말 빠르게 가더라고요.
2024년 2월, 6월, 9월 9일과 30일에 친구들을 한 명씩 군대로 보내고 나니 제 차례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절대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입대의 시간도 빠르게 다가왔고, 가기 전에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열심히 작업을 했습니다.
사클에도 후회없이 곡을 올리고, 미련없이 하고 싶었던 곡들을 마음껏 만들다 보니 어느새 입대의 날이 왔습니다.
10월 21일부터 정확히 59일간 훈련병으로 살았습니다.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첫날부터 노트에 매일매일 느꼈던 점과 배웠던 것, 사람들이 어떤지를 일기장에 적어놓기 시작했고,
매일 소등 후 라이트펜을 켜고 생활이 어떤 지 적어내려가는 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훈련소에 입소하게 되면 카투사들은 카투사끼리만 묶여 한 중대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번 달에는 160명의 카투사가 있었습니다.
짐을 가지고 여러가지 수속 절차를 마친 후 생활관으로 들어왔을 때, 저희 분대에는 저를 제외하고 열 한 명의 낯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틀정도 지나니 다들 친해지고, 어디에서 뭘 하다 왔는지 서로 물어보고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는데..
다들 인서울 대학, 해외 유명 대학,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한 사람 등등 고학력자들만 있었습니다.
이정도면 밖에서 할 줄 아는게 음악 말고는 없는 사람인 저는 이런 뛰어난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영광일 정도였습니다.
훈련소에 입소해서 알게 된 거지만, 제가 허리 디스크와 척추측만증, 심한 평발이 있어 신체등급이 신검 때 받은 2급이 아닌
3급이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어쩐지 일상생활을 할 때 허리가 아프고 오래 걸으면 발이 아픈 게 정상이 아니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일단 지원해서 합격까지 했는데 여기서 포기를 하면 아까워서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짜 죽어라 했습니다.
정말 착한 형들 덕분에 야외 숙영을 나갈 때 어쩔 수 없이 무거운 군장을 들어야 했었는데, 제 짐을 서로 앞서서 들어주겠다고 하는 걸 보고
진짜진짜 진심으로 감동을 먹었습니다.
훈련을 받으면서 힘든 게 있으면 다같이 힘내보자고 서로 기운을 내 주고, 저만 고생하는 게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고생을 했기 때문에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덕분에 긍정적인 마인드셋의 중요성을 여기서도 다시 한 번 깨달은 것 같습니다.
5주가 살짝 넘는 기간동안 논산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으면서 여러 우여곡절들이 있었지만 결국 극복해 내고, 정들었던 논산을 떠나 수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KTA로 전속을 가는 날은 아직도 눈을 감으면 논산의 연무관 내부가 선명하게 기억날 정도로 인상깊었습니다.
180cm는 훌쩍 넘는 키에, 다부진 체격. 여러 인종의 미군이 와서 저희를 이름 순서대로 호명해서 줄을 세웠습니다.
“From now on, all of you will respond to us with ‘Yes sergeant!'”
익숙한 영어가 들리고,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대답은 “예, 알겠습니다!”가 아닌 “Yes sergeant!”로 변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훈련병은 이름으로 불리지 못합니다. 대신 번호가 부여되어 번호로 불리죠.
번호 또한 KTA로 전속을 가면서 변했습니다.
KTA는 육체적으로 힘들다기보단 정신적으로 갈려나가는 게 더 힘든 것 같았습니다.
복무신조도 카투사 복무신조를 추가로 외워야 했고, 매일 04시 기상 후 이어지는 빡센 아침운동, 그 이후 오후 4시까지 이어지는 수업은 전부
영어로 진행되어 미군의 계급과 논산에서 배웠던 전투부상자 처치 등 대처법의 가장 최신 버전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과거 테러와의 전쟁을 거쳐 현대전을 그 어떤 국가보다 많이 경험한 것이 미군이기 때문에, 저희가 배우는 모든 대처법은 피로 쓰여졌음을 명심해야 했습니다.
3주간 주말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4시에 기상하고 9시에 잠드는 빡센 일과와 시간이 매번 바뀌는 불침번을 서며, 한식과는 거리가 먼 음식을 먹다 보니
한번쯤은 아프겠더니 했던 게 KTA 도중에 오게 되었습니다.
열이 40.3도까지 올라 근처 병원의 응급실을 방문해 해열제를 정맥주사로 맞고 사비로 CT까지 찍어가며 치료를 받았는데요.
사실 살면서 처음으로 가보는 응급실에 정맥주사로 해열제를 맞는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규정이 바뀌며 미군 부대 내에서 치료를 받는 건 힘들고, 외부 병원으로 가 32만원이라는 피같은 돈을 지불하고 치료를 받아야 했으나
정말 다행히도 진료비 환급을 어느정도 받을 수 있어서 실제로 나간 돈은 8만원정도였습니다.
KTA에서는 미 육군의 체력검정인 ACFT라는 걸 보게 되는데, 기준도 미군과 동일해 꽤나 몸에 부하가 가는 활동과 심폐지구력을 요하는 편입니다.
종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ACFT 종목 (검정 순서)
1. 데드리프트 최소 63kg
2. SPT(Standing Power Throw, 10파운드 공을 뒤로 던지는 종목) 최소 6.0M
3. HRP(Hand Release Push-up) 최소 10개
4. SDC(Sprint, Drag, Carry, 40kg의 썰매를 끌고 덤벨을 드는 등 25M 트랙을 총 8번? 왕복하는 종목.
다리가 타는 느낌이 들고 심폐지구력과 근력을 동시에 요구합니다.) 최대 2:28초
5. 플랭크 최소 1:30초
6. 2-mile run(약 3.2KM) 최대 22:00
사실 최소점만 넘긴다고 생각하면 논산에서 5주간 매일 체력단련을 하는 것만 성실하게 한다면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기본으로 400점은 가뿐히 넘어야 진급누락이 되지 않고 체력적인 부담이 없는 군생활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래 저는 입대 전에 178cm 90kg, 인바디 기준 과체중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사회에서의 운동량은 음악을 하는 사람 특성상 0에 수렴하고,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서 마우스만 딸깍거리는데.. 체력이 좋을 리가 없죠.
논산에서 죽어라 푸쉬업을 하고 윗몸일으키기, 달리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논산 체력검정 때에는 3KM 뜀걸음을 평발로 16분 30초에 끊는
거의 기적같은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평발이신 분들은 공감이 되시겠지만 깔창을 껴도 오래 뛰다 보면 발이 불타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한번만 참아 보세요.
이거에 더해 KTA에서 매일 아침 하는 빡센 근력운동과 뜀걸음을 하다 보니 결국 지금은 75kg가 되었습니다.
제 정신적, 신체적인 한계를 매일 몰아붙이는 활동을 하다 보니 일상 속에서 뭘 들거나 어디를 뛰어가는 건 힘들다고 느껴지도 않을 정도로 체력이 많이 느는 것 같습니다.
꼭, 인생에서 한 번쯤은 군대를 가 봐야 한다는 말이 왜 그런지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자대배치 날이 찾아왔습니다.
카투사의 자대배치는 특기 무관 완전 랜덤으로 돌려진다고 하지만, 어학 부특기(토익 900 이상)가 붙는다면 어학 관련 보직에 배치될 확률이 조금 더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총 세 번 난수추첨을 하게 되는데, 자세한 방식은 가시면 알게 될 겁니다.
결국 세 번을 돌린 끝에 저는 후방 부대의 헌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군사경찰이라는 보직이 카투사 보직 중에서는 비선호 보직에 해당하기는 하는데, 지옥에 떨어졌다고 생각하던 와중 어학 부특기가 저를 살렸습니다.
12시간 근무에 12시간 근무휴식, 3일 근무 후 3일 외박. 한 달에 15일의 휴일이 있는 거죠. 자대배치를 받을 때 제 남은 군생활은 480일가량이었습니다.
그 중 연가를 포함하면 280일정도를 사회에서 보내게 되는 건데, 근무의 강도와 저녁점호, 훈련 등등 모든 걸 다 빠지는 보직 특성을 고려하면 오히려 공익보다 낫지 않나 싶습니다.솔직히 이만한 씹사기 보직 없습니다. 심지어 근무 시에도 미군과 내내 붙어서 근무를 하며 영어로 이야기를 해서 영어도 더 늘게 됩니다.
어찌 됐든 군대는 군대고, 평소에 지켜야 하는 규율들은 당연히 따라오는 법이죠. 마냥 편한 보직, 편한 곳에 걸렸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다 육군, 공군, 해군에 배치되어 다음 출타날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혼자만 사회로 나와서 싸돌아다니고 있으니까 시기와 질투의 시선을 받는 건 당연지사고요.
사실 이래서 어디 가서 군대 갔다고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별로 보는 사람도 많이 없는 웹사이트인데,
몇 분이 보실 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군대를 갔다는 사실은 글을 보신 여러분과 저 사이의 비밀입니다.
앞으로도 남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군대 썰이나 음악 관련 이야기같은 걸 자주 써 보려고 합니다.
작년처럼 오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만약 그렇다면 그냥 잘 살아있구나~ 하시고 개인적으로 연락 주신다면 바로바로 답장을 해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